Anattā (아나따. not self, 非我)는 `먹이`로 삼는 동일화/동일시를 하지 말라는 가르침
1. 먹이 개념은 구슬들을 꿰어 담마라는 목걸이로 만드는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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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는 인과이고 가장 중요한 개념은 먹이인 것 같다. 부처님은 '존재 (being)'를 오온 (khandhā 칸다: 몸/형태; 느낌; 인식; 상카라; 의식)이라는 먹이를 즐기고 욕망하는 행동을 통해 정의하셨고 (SN 23:2), 오온을 즐기는 (delight in, relish) 행동이 오온을 연료/먹이 (upādāna 우빠다나)로 취하는 것이라 말씀하셨다 (SN 22:5). (그러니 우빠다나를 '집착'으로 번역하여 "나중에 없어져도 미련 갖지 않는다면 있을 때 즐기는 건 괜찮다."는 식의 잘못된! 해석을 혹 야기하지 않도록 '연료,' '먹이,' '먹다,' '즐기다'로 번역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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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 12:63에서는 먹이에 대해 여러 비유를 드셨다. 첫째로, 어떤 부부가 아기와 함께 사막을 건너는 도중에 식량과 물이 모두 떨어져 세 식구 모두 죽을 지경에 처했다. 이때 그 부부가 아기를 죽여 식량으로 삼는다면 (그렇게 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만약! 그렇다면), 식사 때마다 죄책감에 눈물흘리지 않겠느냐고, 그런 식으로 오직 생존을 위해서만 물리적 음식을 취해야 한다고 하셨다. (비건으로 살더라도 인간의 의식주 자체가 많은 생명체를 해치게 된다.) 물리적 음식에 대한 이런 성찰만으로 아나함 (nonreturner)까지 될 수 있다고 하셨다. 두번째로는 산 채로 껍질이 벗겨진 소를 뜯어먹으려 달려드는 온갖 짐승들과 벌레들을 감각접촉 (contact)과 그로 인해 야기되는 느낌에 비유하셨다. (불교에서 '감각'이란 5감+이성의 6감각을 의미하며, 우린 불쾌한! 감각접촉조차 먹이로 삼는다. 지루한 것보다는 낫다고 느끼는 것.) 세번째로는 citta (찟따. mind and heart together)의 의도 (intention)라는 먹이를 불구덩이에 빠져 죽는 일에 비유하셨고, 네번째로는 의식 (consciousness)이라는 먹이를 하루 300개씩의 창에 찔리는 일에 견주셨다. 이런 정신적 먹이에 대해서도 숙고할 경우 아라한이 되는 해탈까지도 가능하다고 말씀하셨으며, Dhp 92에서도 아라한은 먹이를 이해한 사람이라고 하셨다. 이렇듯 먹이 개념은 담마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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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성제도 먹이에 대한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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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온을 먹음/즐김 (우빠다나로 취함) 자체가 고통 (즐김의 대상이 변하기도 하고 먹이를 추구하는 자체도 수고)이라는 것이 사성제 중 첫번째 명제인 고성제의 내용이다 (DN 22). 먹이를 추구하는 이유는 갈증/배고픔/욕망 (taṇhā 탄하) 때문이라는 것이 집성제이고, 먹이를 끊으면 윤회도 고통도 끝난다는 것이 멸성제 (SN 12:31), 그리고 도성제는 먹이를 끊어 고통을 끝내는 해탈에 이르는 방법이 팔정도라는 얘기다. AN 3:77도 업을 토양에, 의식을 씨앗에, 그리고 욕망을 물에 비유한다. 씨앗에서 싹이 트는 것이 윤회인데, 무수한 윤회동안 쌓인 업이 너무 많아 토양을 제거할 수는 없으니 윤회를 끝내려면 수분공급을 중단하여 씨앗을 고사 (枯死)시키는 방법밖에 없다고 기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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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먹는 행위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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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를 분류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번째 방식의 분류가 오온이고, 두번째 방식은 물리적 음식, 감각접촉, 의도, 의식으로 나누는 것이며, 세번째 방식은 감각접촉, 견해, 종교적 행동방식, 자아관으로 나누는 것이다. 마치 음식을 전채-메인-후식으로 나눌 수도 있고 고기-곡물-야채로 나눌 수도 있으며 또는 국적별로 나눌 수도 있는 것과도 비슷하다고 나는 이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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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의 전형/대표인 물리적 음식을 통해 먹는 행위의 본질을 파악하자면, ‘나‘가 아닌 외부의 것을 취해 ‘나‘의 일부로 만드는 (taking what is not 'I' and making it into a part of 'I') 동일화 (identify, cathect, 'I'-making, 'mine'-making)다. 그래서 부처님이 돌아가셔도 감정적 영향은 받지 않을 것 같다는 사리풋타의 말에 아난다가 "... it’s because Ven. Sāriputta’s I-making & mine-making and obsession with conceit have long been well uprooted ..."라고 한 것 (SN 21:2). (사리풋타는 부처님을 자신의 감정적 먹이로 삼지 않는다는 뜻. I-making과 mine-making은 타니사로 스님 개인의 워딩이 아니고 보디 스님, 수자토 스님 모두 사용하시는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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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eding on Feeding'
"... ... That's what eating is all about; this taking the not-self and making it sel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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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eding Off of Others'
"... ... we feed on them; they become a part of u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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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윤회계의 먹이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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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들은 뭔가가 손에 잡히는 대로 우선 입에 넣는데, 사실 어른도 이런 아기들처럼 끊임없이 먹이추구를 한다. 명상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도 언제나 6감각의 자극원을 찾는 일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 다시 말해, '내 먹잇감 후보' 또는 '나의 일부'가 될 자격을 갖추고 있는 것들을 끊임없이 찾아헤매며, 누구/무엇을 마주치든 '이 사람/물건/상황에서 나는 어떤 이로움을 취할 수 있을까?'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 본능적으로. 또 어떤 아기를 '내 자식'으로 간주하면 일거수일투족이 예뻐 보이고 관심과 애정이 가는데, 이렇듯 X를 '내 것'으로 간주/동일시하는 자체가 X를 먹이로 삼는다는 혹은 삼겠다는 의미인 셈. 그러니 '나'를 투영하는 대상이 많아질 수록, 무언가를 '나'와 동일시/동일화하여 '내 것'이라고 생각할수록, 그 대상을 먹이로 삼는 경향이 강해지고 그럴수록 해탈과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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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에는 물리적 음식이나 감각접촉뿐 아니라 사랑, 보람, 자기방어 등의 모든 '효용'이 포함된다. 예를 들어 인터넷에서 악플을 다는 사람은 '이렇게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나'라는 자아관을 먹이로 추구하는 것일 수 있고, 우울증에 빠졌다가 가수가 되는 희망을 통해 삶의 활력을 되찾은 사람은 가수가 되겠다는 의도/의지가 먹이가 된 것이다. (가수로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경우, 가수라는 먹이를 추구하는 과정 자체가 또 행복하다는 그 생각/의식 자체가 나의 의식에 또 다시 먹이가 된다.) 평생 사기를 많이 당해 누구를 만나든 최대한으로 의심하는 습관을 갖게 된 사람도 그런 의심이 자신을 지켜 줄 거라는 믿음을 먹이로 삼고 있는 것. 설사 어떤 '행동' (intention, attention, perception, feeling 포함)이 당사자의 행복에 공헌하지 못 하고 불행만 야기하는 경우에도 본인은 의식에서든 무의식에서든 그것이 모종의 효용을 가져온다고 생각하기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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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모든 먹이추구 행동이 saṅkhāra (상카라. fabrication, putting together)이며, 먹이추구 과정이 bhāva (바바. becoming)다. 내가 가수로 성공하려면 그 업계의 동향과 시공의 특징 등을 이해해야 하기에 바바는 세계관과 자아관을 포함한다. 수행도 해탈의 욕망 때문에 하는 것이니 명상도 상카라이고 바바다. 상카라나 바바를 먹이와 무관하게 설명하는 경우가 많지만, 먹이라는 줄에서 벗어나는 구슬은 목걸이가 되지 못 하고 따로 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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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eding on Feeding'
상카라의 의미는 fix up food, 즉 원재료들을 한데 모으고 조작하여 먹을 수 있는 형태로 만든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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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해탈은 단계적 수행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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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보았듯 먹이추구와 '나'라는 관념/단어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며 해탈하려면 모든 먹이를 끊어야 하는데, 한 가지 딜레마는 궁극적 목적지인 해탈에 도달하려면 그 여정에서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수행을 통해 의식의 힘을 기르지 않은 상태에서 처음부터 무조건 '모든 걸 내려놓자!' 생각한들, 의식차원에서의 상카라는 잠시 좀 줄어들다 해도 자신이 인지조차 못 하고 있는 온갖 상카라가 무의식에서는 계속 들끓기에 해탈하지 못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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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나'라는 관념/단어와 먹이를 처음부터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고 업과 윤회에 대한 이해인 Mudane Right View (예: '내!가 악업을 쌓으면 내!게 화가 온다.')에서 시작하여 탐진치에 오염된 불건강한 먹이 (감각접촉 같은)의 비중을 줄여 나가고 탐진치 적은/없는 건강한 먹이 (선행, 해탈에 대한 욕망/의지, 팔정도의 8요소들 같은)의 비중은 늘려 나가야 한다. 수행이 성숙해 가면서 '나'가 아닌 행위의 인과 자체에만 촛점!을 두는 Transcendent Right View로 사고방식도 변화시켜야 한다 (예: '감각접촉은 느낌을 낳고 느낌은 욕망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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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팔정도를 마스터한 후! 선정유지의 상카라가 유일한 상카라이고 선정의 행복이 유일한 먹이인 상태가 되었을 때, 그 시점에 가서 선정유지의 상카라와 선정의 행복조차 내려놓으면 상카라도 제로, 먹이도 제로인 상태가 되므로 그때 해탈하게 된다. 그리고 해탈상태라는 것은 더이상 먹을 필요 자체가 없는 완전한 자유다. 이걸 이해하는 것이 Final Right View인데, 이걸 이해 못 하거나 이해하더라도 선정의 먹이를 끊지 못 하면 해탈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담마를 정확히, 완전히, 이해하면 언젠가 스스로 내려놓을 수도 있게 되므로 그래서 "담마는 자기초월적 (self-transcendent)."이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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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Aniccā - Dukkha - Anattā는 진리가 아니라 식욕억제제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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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갑에 해골그림이 붙어 있는 걸 오래 전 본 적이 있다.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경고이며 그런 想이 우리의 마음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이 크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어떤 야생 열매를 먹고 배탈난 적이 있다면 그후 우린 비슷한 모양과 색깔의 열매를 볼 때마다 배탈의 고통이라는 이미지가 떠올라 먹고 싶은 생각이 사라질 거다. 수행 초기에서든 해탈 직전의 순간에서든, 해당 시점에서 수행에 도움되지 않는 것을 먹이로 삼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동일화를 차단하는 이런 도구가 바로 anattā (아나따) 같은 sañña (산냐. perception, 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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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10:60에서는 inconstant, not-self, unattractiveness, drawbacks, abandoning, dispassion, cessation, distaste for every world, undesirability of fabrications, mindfulness of in-and-out breathing의 10가지 산냐가 언급되었고, AN 9:36에서는 inconstant, stressful, disease, cancer, arrow, painful, affliction, alien, disintegration, emptiness, not-self의 11개가 언급되었다. 즉 aniccā (아니쨔. inconstant, 무상) - dukkha (둑카. suffering, 고) - anattā (아나따. not self)가 다른 sañña들보다 특별할 것도 없다는 얘기. 실제로 부처님이 4성제는 sacca (삿챠. 진리)라 부르신데 반해 (그것도 categorical truth, 즉 절대적 진리라 부르셨음) 무상-고-비아는 산냐라고 칭하셨을 뿐이건만, 이 셋을 좀더 자주 언급하셨다는 이유만으로 후대의 사람들은 저 많은 산냐들 중 이 셋만 따로 뽑아 三法印 (Three Characteristics)이라고 특별취급을 하면서 "모든 걸 무상-고-비아로써 꿰뚫는 것이 지혜이고 이걸 체험하는 것이 해탈" 류의 잘못된 주장들을 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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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aniccā - dukkha - anattā 같은 想들은 담배갑의 해골그림처럼 일종의 식욕억제제 역할을 하는 도구일 뿐이며, 해탈 순간을 묘사하는 경전들에서 해탈 직전 아나따를 언급하는 이유는 선정의 행복이라는 마지막! 먹이조차 내려놓아야 한다는 의미였을 뿐이다. 특히 '나'라는 게 있느냐 없느냐가 관심사인 게 아니라 그 무엇에 대해서도 동일화/동일시 않고 (非我) 먹이로 삼지 않는 것이 관심사이므로, 그렇기에 無我 아닌 非我가 부처님의 취지에 부합하는 적확한 번역이다. ("'나' 있다."도 "'나' 없다."도 똑같이! 견해의 뒤엉킴/족쇄이며 inappropriate attention 6가지에 포함된다고 MN 2가 못박았음을 기억해야 한다.) 겸손하라거나 무조건 남의 뜻에 맞추고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라거나 이런 가르침도 전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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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이에 대한 타니사로 스님의 다양한 법문들도 추후 하나씩 요약해 드릴 계획이니 '먹이에 대한 타니사로 스님의 법문'으로 검색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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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명상을 '지루'하게 느끼는 것도 언제나 6감각의 자극원을 찾는 일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이고 심심하면 하다못해 군것질/잡생각이라는 먹이라도 추구하는데, 이렇듯 잠시도 가만 못 있고 안절부절하는 지구상 존재들의 이 안절부절 에너지를 '수확'하는 외계인들이 있다고 무묘앙에오라는 일본의 한 기인(奇人)은 말했었다. 돼지나 닭이 끊임없이 먹지 않는다면 고기를 위해 사육되지 않을 것이듯, 마찬가지로 인간의 마음도 끊임없이 뭔가 자극=먹이를 추구하기에 에너지源으로 사육된다는 것. 영화 "매트릭스"의 설정도 무묘앙에오에서 빌려온 것이 아닌가 나는 생각했었는데, 무묘앙에오가 왜 이런 얘기를 했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불교공부를 할수록 점점 더 이해는 간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오해 #23. 윤회는 방편일 뿐 부처님은 윤회를 믿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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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 없음'은 '연기되었음'의 의미일 뿐 '없다'는 뜻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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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무상-고-무아'라는 것이 불교에서 가르치는 진리 (truth)?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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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니사로 스님의 초기경전 해설 공부모임 가입방법
=> 아래 글의 2번을 따라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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